[나영무 박사의 '월드컵 Again 2002'] ⑤ 2009년 홍명보의 '여러분'
솔병원
2022.02.2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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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청소년팀-올림픽팀-A대표팀 감독 등 엘리트 코스를 차례로 밟았다. 남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태극마크와의 진한 인연이다. 그의 감독 인생 출발은 2009년 U-20 대표팀이다. 당시 나는 주치의로 훈련에서부터 U-20 월드컵이 열린 이집트까지 동행했다. 지도자 홍명보에 대한 첫 느낌은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홍명보는 파주 소집훈련에서 선수들을 모아놓고 “여러분! 가슴에 달린 태극마크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같이 열심히 해봐요”라고 말했다.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너희들’에 익숙했던 선수들도 감독의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존댓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단지 1회성에 그치지 않고 대회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선수를 존중해야 감독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게 홍명보의 생각이었다. 하루는 김태영 코치가 선수들을 향해 큰소리를 내자 홍명보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호통으로는 좋은 팀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홍명보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는 모두 평등하다. 감독은 선수들을 위해 병풍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신념과 의지로 인해 팀은 상명하복 관계에서 수평 관계로 서서히 변해가며 응집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의 지도력을 보면 그간 한국팀을 거쳐 갔던 네덜란드 감독 3인방의 향기가 묻어 나왔다. 그가 모셨던 히딩크-아드보카트-베어벡이다.
그는 히딩크에게서 체력과 정신력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래서 일본으로 건너가 이케다 세이코를 피지컬 전담 코치로 모셔왔다. 아드보카트에게는 선수들과의 관계 및 팀 운영, 베어벡에게는 전술과 함께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 짜는 능력을 전수받았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 이야기다. 당시 코치였던 홍명보는 아드보카트와 베어벡이 파주에서 고성이 오가며 싸움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둘은 당장에라도 보지 않을 사이처럼 화를 냈지만 돌아선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헤헤거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원인은 수비형 미드필더에 이호와 이을용의 기용을 두고 벌인 설전이었다. 감독과 코치간의 색다른 소통법이었다.
한국적 문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감독 홍명보가 벤치에 앉을 때 두 코치의 가운데에 자리잡고 경기의 다양한 상황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또한 배려의 마음도 배웠다. 홍명보는 경기가 종료되면 우선 벤치 멤버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벤치 멤버들이 있었기에 베스트 11이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는 신뢰의 표시다. 이것도 아드보카트 감독의 행동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서다.
베어벡을 통해 홍명보는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눈높이를 감독이 아닌 선수에게 맞췄다. ‘왜 안되니?’하며 선수들의 실수를 질책하는 대신 더 좋은 위치와 움직임에 대한 이해를 시켰다.
홍명보는 이같은 열정으로 초보 감독의 하루하루를 채워나갔고, 선수들도 감독을 절대 신뢰하며 훈련에 자신을 던졌다. 그리고 이집트로 향했다. 당시 특출한 스타플레이어도 없는 데다 세계 대회 데뷔전을 갖는 홍명보에 대한 우려도 더해져 조별리그 예선 탈락이 지배적이었다. 이같은 예상을 반영한 것인지 카메룬과의 1차전에서 한국은 0-2로 무릎을 꿇었다. 경기 후 라커룸 분위기는 패배로 무거웠다. 선수들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적막한 분위기에서 홍명보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고개를 드세요. 오늘 정말 잘 싸웠습니다. 더 열심히 하면 됩니다. 지난 경기는 잊고 다음 경기를 즐깁시다”며 선수들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질책을 예상했던 선수들은 감독의 말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감독의 ‘여러분’에 감동이 된 듯 눈빛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후 선수들은 주눅들지 않고 독일과의 2차전에서 극적인 무승부를 거뒀고, 3차전에서 미국을 3-0으로 완파하며 16강 진출했다. 경기 후 선수들은 벤치로 달려간 뒤 홍명보 감독에게 큰 절을 올렸다. 자신들을 믿어준 형님 같은 감독에 대한 진심이 가득한 감사의 표시였다. 가슴 한켠에서 뭉클함이 솟아올랐다. 홍명보 감독이 그토록 강조한 ‘원 팀(One Team)’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후 선수들은 파라과이도 잡고 기분좋은 8강의 기쁨을 누렸다.
초보 감독에게는 잊을 수 없는 2009년이었다. 당시 활약했던 구자철, 김보경, 홍정호, 김영권 등 7명은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며 브라질 월드컵대표팀 승선에 성공했다. 이들의 장점은 누구보다 홍명보의 축구철학과 함께 끈끈했던 팀워크를 기억하고 있는 점이다.
2009년의 즐거운 추억은 역사의 저편에 묻혀 있다. 5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홍명보의 리더십에도 변화가 있었다. 결전을 앞둔 그가 지도자 인생의 ‘초심’을 떠올리며 브라질에서도 성공 신화를 써내려 가기를 응원한다.
홍명보는 파주 소집훈련에서 선수들을 모아놓고 “여러분! 가슴에 달린 태극마크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같이 열심히 해봐요”라고 말했다.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너희들’에 익숙했던 선수들도 감독의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존댓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단지 1회성에 그치지 않고 대회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선수를 존중해야 감독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게 홍명보의 생각이었다. 하루는 김태영 코치가 선수들을 향해 큰소리를 내자 홍명보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호통으로는 좋은 팀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홍명보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는 모두 평등하다. 감독은 선수들을 위해 병풍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신념과 의지로 인해 팀은 상명하복 관계에서 수평 관계로 서서히 변해가며 응집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의 지도력을 보면 그간 한국팀을 거쳐 갔던 네덜란드 감독 3인방의 향기가 묻어 나왔다. 그가 모셨던 히딩크-아드보카트-베어벡이다.
그는 히딩크에게서 체력과 정신력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래서 일본으로 건너가 이케다 세이코를 피지컬 전담 코치로 모셔왔다. 아드보카트에게는 선수들과의 관계 및 팀 운영, 베어벡에게는 전술과 함께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 짜는 능력을 전수받았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 이야기다. 당시 코치였던 홍명보는 아드보카트와 베어벡이 파주에서 고성이 오가며 싸움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둘은 당장에라도 보지 않을 사이처럼 화를 냈지만 돌아선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헤헤거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원인은 수비형 미드필더에 이호와 이을용의 기용을 두고 벌인 설전이었다. 감독과 코치간의 색다른 소통법이었다.
한국적 문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감독 홍명보가 벤치에 앉을 때 두 코치의 가운데에 자리잡고 경기의 다양한 상황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또한 배려의 마음도 배웠다. 홍명보는 경기가 종료되면 우선 벤치 멤버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벤치 멤버들이 있었기에 베스트 11이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는 신뢰의 표시다. 이것도 아드보카트 감독의 행동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서다.
베어벡을 통해 홍명보는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눈높이를 감독이 아닌 선수에게 맞췄다. ‘왜 안되니?’하며 선수들의 실수를 질책하는 대신 더 좋은 위치와 움직임에 대한 이해를 시켰다.
홍명보는 이같은 열정으로 초보 감독의 하루하루를 채워나갔고, 선수들도 감독을 절대 신뢰하며 훈련에 자신을 던졌다. 그리고 이집트로 향했다. 당시 특출한 스타플레이어도 없는 데다 세계 대회 데뷔전을 갖는 홍명보에 대한 우려도 더해져 조별리그 예선 탈락이 지배적이었다. 이같은 예상을 반영한 것인지 카메룬과의 1차전에서 한국은 0-2로 무릎을 꿇었다. 경기 후 라커룸 분위기는 패배로 무거웠다. 선수들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적막한 분위기에서 홍명보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고개를 드세요. 오늘 정말 잘 싸웠습니다. 더 열심히 하면 됩니다. 지난 경기는 잊고 다음 경기를 즐깁시다”며 선수들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질책을 예상했던 선수들은 감독의 말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감독의 ‘여러분’에 감동이 된 듯 눈빛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후 선수들은 주눅들지 않고 독일과의 2차전에서 극적인 무승부를 거뒀고, 3차전에서 미국을 3-0으로 완파하며 16강 진출했다. 경기 후 선수들은 벤치로 달려간 뒤 홍명보 감독에게 큰 절을 올렸다. 자신들을 믿어준 형님 같은 감독에 대한 진심이 가득한 감사의 표시였다. 가슴 한켠에서 뭉클함이 솟아올랐다. 홍명보 감독이 그토록 강조한 ‘원 팀(One Team)’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후 선수들은 파라과이도 잡고 기분좋은 8강의 기쁨을 누렸다.
초보 감독에게는 잊을 수 없는 2009년이었다. 당시 활약했던 구자철, 김보경, 홍정호, 김영권 등 7명은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며 브라질 월드컵대표팀 승선에 성공했다. 이들의 장점은 누구보다 홍명보의 축구철학과 함께 끈끈했던 팀워크를 기억하고 있는 점이다.
2009년의 즐거운 추억은 역사의 저편에 묻혀 있다. 5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홍명보의 리더십에도 변화가 있었다. 결전을 앞둔 그가 지도자 인생의 ‘초심’을 떠올리며 브라질에서도 성공 신화를 써내려 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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