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무 박사의 '월드컵 Again 2002'] ② 히딩크는 '욕쟁이 할배'
솔병원
2022.02.2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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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18일 이탈리아를 격파했던 대전의 밤은 환희로 가득 찼다. 기적 같은 역전승에 선수단 분위기는 한껏 고무됐다. 의무팀도 마찬가지였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숙소로 돌아온 수비수 최진철이 “땀이 나고 손발이 떨려 밥을 먹지 못하겠다”고 호소했다. 탈수와 탄수화물 부족으로 인한 현상이었다. 검사를 위해 건양대 병원으로 최진철을 후송한 뒤 링거를 맞혔다. 117분간의 혈투에 체력이 고갈된 다른 선수들도 숙소에서 링거 주사를 놓아주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선수들의 얼굴은 너무 평온했다. 모든 걸 쏟아부은 그들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의사로서 ‘인간 체력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가’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1년여 전 이용수 기술위원장과 히딩크가 나누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당시 히딩크는 이 위원장에게 “한국이 4회 연속 월드컵에 나갔는데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고, “자신감 부족으로 우리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서다”는 답을 들었다.
히딩크는 “그것도 이유지만 더 큰 문제는 체력적 요인이다”고 분석한 뒤 파워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이른바 악명높은 셔틀런(shuttle run·20m구간 왕복달리기)과 매회 10분씩 진행된 5대5 미니게임, 3분짜리 미니게임, 저녁엔 웨이트트레이닝 등 체력의 극한을 시험하는 혹독한 훈련으로 선수들을 몰아붙였다.
훈련 초기 일부 선수들은 “이러다 본선 무대를 밟아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푸념이 흘러나올 만큼 녹초가 됐다. 주장 홍명보도 훈련 느낌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숨을 헐떡거리며 “와서 한번 해보세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히딩크의 뚝심 있는 강행군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무려 19명 정도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지만 히딩크는 훈련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솔직히 의무분과위원장으로서 걱정이 됐다.
조심스럽게 ‘부상자가 많으니 훈련 강도를 조절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건의하자 히딩크 입에서 “No”라는 단어가 나왔다. 히딩크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며 강한 정신력은 체력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 예선과 토너먼트로 벌어지는 16강·8강전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체력 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의학적으로도 공감이 가는 말이다. 예를 들어 600개의 근육으로 이뤄진 인간의 몸은 평상시 30% 정도를 쓴다고 할때, 정신력이 가미될 경우 근육을 활성화시켜 50~60%까지 끌어올려 큰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한국 선수 특유의 정신력과 성실함을 믿고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였다. 당시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던 설기현이 소속팀에서 이틀전 풀타임을 뛰고 대표팀에 합류했다. 이를 알고 있는 히딩크는 설기현에게 “친선경기에 출전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일종의 정신력 테스트였다. 설기현은 “몸이 피곤해 풀타임은 힘들지만 30분은 자신있다”고 말했다. 히딩크는 이런 것을 원했다. 이같은 자세 덕분에 설기현은 월드컵 본선에서 중용됐다.
훈련장에서 히딩크의 다른 이름은 ‘욕쟁이 할배’다. 선수들의 긴장감 유지를 위해 영어로 욕을 달고 다녀서 젊은 선수들이 붙여준 것이다. 선수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불호령과 함께 ‘퍼킹(fucking)’, ‘스튜피드(stupid)’ 등이다. 또한 ‘머리를 들라, 자기 플레이에 집중하라’도 단골메뉴다.
지적받는 선수 입장에선 기분이 나빴지만 히딩크는 충분한 설명으로 선수를 이해시켰다. “너희는 볼을 너무 착하게 찬다. 이래선 유럽팀을 상대할 수 없다. 머리를 들어 시야를 넓히면 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다. 필드 플레이어 10명이 90분동안 각각 200번의 압박을 가하면 어떤 강팀도 쉽게 경기를 풀어내지 못할 것이다”는 내용으로 마음을 다독였다.
그라운드에서 있었던 일은 모두 그라운드에서 풀었던 히딩크였기에 선수들은 감독에 대해 악감정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히딩크는 훈련이 끝나면 180도 돌변했다. ‘열심히 했으니 편히 쉬자’는 말과 함께 선수들의 어깨를 툭 치며 스킨십을 나눴다. 밀고 당기기를 잘하는 심리전의 대가였다.
히딩크는 폴란드전을 하루 앞두고 그간 심혈을 기울인 체력프로그램에 대한 성적표를 자신의 방에서 선수 개개인에게 알려줬다. 컴퓨터에 담긴 데이터를 보여주며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설명했다. 미드필더 이을용에게는 “네가 대표팀에서 최고로 향상됐다. 너의 체력은 내가 맡았던 레알 마드리드 선수보다 낫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나머지 선수들의 체력 수치도 크게 향상돼 히딩크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결전을 하루 앞둔 감독의 깜짝 선물에 태극전사들의 심장은 훨씬 뜨거워졌다. 4강 신화를 향한 느낌 있는 첫 발은 그렇게 시작됐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금 파주에서 훈련에 한창이다. 요즘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2002년 멤버와 2014년 멤버들의 체력 비교다.
단순 비교는 곤란하지만 홍명보팀 멤버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사실 히딩크가 부임하기 전 우리 선수들의 체력은 무조건 뛰는 유산소 운동에 의존해 있었다.
그러다 셔틀런으로 대표되는 무산소 운동 개념이 도입돼 2002년 월드컵 이후 세대들은 체계적인 관리를 받았다. 무산소 운동 능력이 떨어지면 젖산이 발생해 쉽게 피로해진다.
꾸준한 무산소 운동으로 움직일 때 순간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움직임 간의 회복시간을 줄여 효과적이고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재활 시스템의 발달로 선수의 부상 관리도 잘 이뤄져 체력 관리면에서 우위에 있는 점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히딩크가 보여준 것처럼 체력을 컨트롤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다.
문득 1년여 전 이용수 기술위원장과 히딩크가 나누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당시 히딩크는 이 위원장에게 “한국이 4회 연속 월드컵에 나갔는데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고, “자신감 부족으로 우리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서다”는 답을 들었다.
히딩크는 “그것도 이유지만 더 큰 문제는 체력적 요인이다”고 분석한 뒤 파워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이른바 악명높은 셔틀런(shuttle run·20m구간 왕복달리기)과 매회 10분씩 진행된 5대5 미니게임, 3분짜리 미니게임, 저녁엔 웨이트트레이닝 등 체력의 극한을 시험하는 혹독한 훈련으로 선수들을 몰아붙였다.
훈련 초기 일부 선수들은 “이러다 본선 무대를 밟아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푸념이 흘러나올 만큼 녹초가 됐다. 주장 홍명보도 훈련 느낌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숨을 헐떡거리며 “와서 한번 해보세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히딩크의 뚝심 있는 강행군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무려 19명 정도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지만 히딩크는 훈련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솔직히 의무분과위원장으로서 걱정이 됐다.
조심스럽게 ‘부상자가 많으니 훈련 강도를 조절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건의하자 히딩크 입에서 “No”라는 단어가 나왔다. 히딩크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며 강한 정신력은 체력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 예선과 토너먼트로 벌어지는 16강·8강전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체력 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의학적으로도 공감이 가는 말이다. 예를 들어 600개의 근육으로 이뤄진 인간의 몸은 평상시 30% 정도를 쓴다고 할때, 정신력이 가미될 경우 근육을 활성화시켜 50~60%까지 끌어올려 큰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한국 선수 특유의 정신력과 성실함을 믿고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였다. 당시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던 설기현이 소속팀에서 이틀전 풀타임을 뛰고 대표팀에 합류했다. 이를 알고 있는 히딩크는 설기현에게 “친선경기에 출전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일종의 정신력 테스트였다. 설기현은 “몸이 피곤해 풀타임은 힘들지만 30분은 자신있다”고 말했다. 히딩크는 이런 것을 원했다. 이같은 자세 덕분에 설기현은 월드컵 본선에서 중용됐다.
훈련장에서 히딩크의 다른 이름은 ‘욕쟁이 할배’다. 선수들의 긴장감 유지를 위해 영어로 욕을 달고 다녀서 젊은 선수들이 붙여준 것이다. 선수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불호령과 함께 ‘퍼킹(fucking)’, ‘스튜피드(stupid)’ 등이다. 또한 ‘머리를 들라, 자기 플레이에 집중하라’도 단골메뉴다.
지적받는 선수 입장에선 기분이 나빴지만 히딩크는 충분한 설명으로 선수를 이해시켰다. “너희는 볼을 너무 착하게 찬다. 이래선 유럽팀을 상대할 수 없다. 머리를 들어 시야를 넓히면 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다. 필드 플레이어 10명이 90분동안 각각 200번의 압박을 가하면 어떤 강팀도 쉽게 경기를 풀어내지 못할 것이다”는 내용으로 마음을 다독였다.
그라운드에서 있었던 일은 모두 그라운드에서 풀었던 히딩크였기에 선수들은 감독에 대해 악감정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히딩크는 훈련이 끝나면 180도 돌변했다. ‘열심히 했으니 편히 쉬자’는 말과 함께 선수들의 어깨를 툭 치며 스킨십을 나눴다. 밀고 당기기를 잘하는 심리전의 대가였다.
히딩크는 폴란드전을 하루 앞두고 그간 심혈을 기울인 체력프로그램에 대한 성적표를 자신의 방에서 선수 개개인에게 알려줬다. 컴퓨터에 담긴 데이터를 보여주며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설명했다. 미드필더 이을용에게는 “네가 대표팀에서 최고로 향상됐다. 너의 체력은 내가 맡았던 레알 마드리드 선수보다 낫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나머지 선수들의 체력 수치도 크게 향상돼 히딩크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결전을 하루 앞둔 감독의 깜짝 선물에 태극전사들의 심장은 훨씬 뜨거워졌다. 4강 신화를 향한 느낌 있는 첫 발은 그렇게 시작됐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금 파주에서 훈련에 한창이다. 요즘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2002년 멤버와 2014년 멤버들의 체력 비교다.
단순 비교는 곤란하지만 홍명보팀 멤버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사실 히딩크가 부임하기 전 우리 선수들의 체력은 무조건 뛰는 유산소 운동에 의존해 있었다.
그러다 셔틀런으로 대표되는 무산소 운동 개념이 도입돼 2002년 월드컵 이후 세대들은 체계적인 관리를 받았다. 무산소 운동 능력이 떨어지면 젖산이 발생해 쉽게 피로해진다.
꾸준한 무산소 운동으로 움직일 때 순간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움직임 간의 회복시간을 줄여 효과적이고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재활 시스템의 발달로 선수의 부상 관리도 잘 이뤄져 체력 관리면에서 우위에 있는 점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히딩크가 보여준 것처럼 체력을 컨트롤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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