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영무 박사의 '말기 암 극복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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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에게 악력기가 필수? 그들을 돕는 든든한 지원군들
‘○○○ 치료로 암을 이겨냈다. ○○먹고 암을 완치했다.’
암 환자들과 가족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이다.
나에게도 ‘이게 좋다, 저게 좋다’ 하는 여러 유혹들이 있었다.
2년여 전 개 구충제 펜벤다졸이 암 환자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동물의 체내 기생충이 먹는 영양분의 공급을 끊어 기생충을 굶겨 죽이는 원리를 인체 암세포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펜벤다졸은 한때 품귀현상까지 빚어지기도 했다.
이를 바라보면서 나는 항암치료에 지쳐 벼랑끝에 몰린 암환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했다.
또한 수많은 정보의 유혹 속에서 치료의 중심을 잡는게 쉽지 않다는 것도 느꼈다.
사실 영악한 암세포와의 싸움은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이다.
초전박살 승부가 아닌 시간의 내공과 인내를 더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같은 치료와 약을 먹더라도 결과는 제각각이다.
어떤 환자는 효과가 좋은 반면 다른 환자는 별다른 징후도 없을 만큼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한다.
환자마다 지닌 암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치료의 주체가 환자 자신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효과가 좋다고 맹목적으로 따라하기 보다는 의학적으로 검증이 되었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두고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술,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등 이른바 3대 표준치료는 의학적으로 검증된 것으로 암세포를 파괴하는 주력 공격부대로 꼽힌다.
갈수록 교활하고 영악해진 암세포를 공략하고, 주력 공격부대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지원군도 많이 등장했다.
미슬토·자닥신 등 면역주사, 면역세포주사, 부작용을 줄이는데 쓰는 글루타민, 타치온 주사, 항산화작용인 고용량 비타민C 주사, 셀레늄 주사를 비롯해 고주파온열치료 등 다양하다.
지원군을 고를 때, 검증된 것은 시도해 본 뒤 부작용 없이 몸에 맞는 것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나도 한 두가지 시도는 해보았다.
주력 부대와 지원군으로 암과 맞설 때 군수품 보급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항암치료 기간을 대비해 미리 준비해 두면 유용하다.
필수 아이템 1번은 마스크다.
코로나 시국을 떠나 마스크는 암환자에게 정말 중요하다.
외출 시 감염 위험을 줄여주는 한편 구역질을 유발하는 냄새 차단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번은 체온계다. 항암 기간에는 백혈구의 일종인 호중구 수치가 떨어져 열이 날 수 있다. 수시로 열을 체크해 38도 이상의 고열이 지속되면 응급실로 가야 한다. 감염일 수 있기 때문이다.
3번은 악력기나 실리콘 공이다.
암환자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혈관관리용이다. 혈관이 잘 보이지 않거나 굳어지면 채혈이나 혈관 주사할 때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평소 악력기나 실리콘 공을 이용해 주먹을 쥐었다 폈다 등의 운동을 하면 혈액순환은 물론 혈관도 튼튼해진다.
그리고 악력이 좋아지면 전체적인 근력 증가 효과도 볼 수 있다.
4번은 모자다. 5-FU(5-플루오로우라실)라는 항암제를 맞고 햇빛에 노출될 경우 피부가 검게 변하기에 외출시 모자 등으로 자외선을 차단해야 한다. 또한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추울 때에는 머리에서 더 추위를 느낄 수 있다.
5번은 보습크림과 면장갑이다. 손과 발이 갈라져 피나고 통증이 있는 수족증후군과 말초신경염으로 인한 불편을 덜어주는 품목이다.
손과 발의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보습크림은 수시로 발라주어야 한다. 나 역시 보습크림을 바른 뒤 손에는 면장갑, 발은 보온양말을 신고 생활하면서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
암과의 전투에서 지원군과 군수품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다. 이른바 ‘마음 항암제’다.
암세포와의 장기전에서 지치지 않고, 흔들림없이 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나의 강력한 ‘마음 항암제’는 “열심히 치료받으면 좋아질거야! 어디 한번 해보자”는 강한 의지와 긍정적 마인드였다.
특히 나처럼 직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이겨낸 이해인 수녀님이 2011년에 출간한 산문집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의 글에서 많은 감동과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암투병 하면 으레 고통, 우울,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리는데 수녀님은 ‘명랑 투병’이라는 단어로 이를 유쾌하게 승화시켰다.
수녀님 글의 백미는 이 부분이다.
“병이 주는 쓸쓸함에 맛들이던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지요.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며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임을 새롭게 기억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상의 여정을 다 마치는 그날까지 이왕이면 행복한 순례자가 되고 싶다고 작정하고 나니 아픈 중에도 금방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뇌를 송곳처럼 파고든 이 단락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가슴에 있던 나약함을 밀어내고 ‘반드시 삶의 끈을 붙들어야 한다. 나에게는 아직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리고 반드시 해야한다’는 본능을 일깨웠다.
항암치료를 마친 후에도 내 자신이 나태해졌다는 생각이 들 때 이 글을 되새기며 마음을 잡는다.
7편을 마무리하면서 오늘도 암세포와 힘든 전쟁을 치르며 수고한 암환우들에게 수녀님의 시 한편을 전해드리고 싶다.
〈어떤 결심〉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 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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