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힘든 순간마다 용기 준다…중꺾마 보다 앞선 '그날의 기적' ['재활 명의' 나영무의 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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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 명의’ 나영무의 진담 (진료실 담소)
칼럼 9) 붉은 6월의 행복한 추억 속으로
얼마 전 가족과 함께 서울의 한 쇼핑센터에 있는 냉면집을 찾았다.
주문을 마친 뒤 물을 마시고 있는데 저만치서 낯익은 얼굴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초롱이’ 이영표였다. 세 딸들과 우연히 지나가다 나를 발견하고 들어온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정말 반가웠다.
그동안 통화는 몇 번 했지만 얼굴을 본 것은 그가 2009년 사우디 리그 이적 당시 내 병원에서 메디컬테스트를 받은 이후 14년만이다.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주고받은 뒤 그는 “박사님, 즐거운 식사시간 되시고 늘 건강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내 음식값을 슬그머니 계산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의 따스한 마음과 정이 느껴져 고마웠다.
그와의 인연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때 시작돼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이어졌다. 당시 월드컵 준비를 위해 1년여 넘게 동고동락 하다보니 스포츠의학 서적을 나에게 빌려갈 만큼 친해졌다.
그는 한일월드컵에서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그는 조별리그 첫 경기를 불과 3일 앞두고 진행된 미니게임에서 종아리 부상을 당했다. 단순 타박상으로 생각했지만 정밀검사 결과 근육 파열로 최소 3주간의 재활이 예상됐다.
히딩크 감독은 그를 엔트리에서 제외하고 대체선수 발탁을 고려했다.
하지만 그의 왼발 능력과 지능적 플레이 등 전술적 활용도가 높아 고심 끝에 그를 품고 가기로 했다.
대신 의무팀에게 “모든 방법을 동원해 최대한 빨리 회복시켜라”는 특별 당부를 했다. 의료진들이 그의 재활치료에 매달렸고, 그는 조별리그 3번째 경기부터 출전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냈다.
이영표와의 만남속에 올해도 6월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6월이 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렌다. 21년전 심장을 뜨겁게 달구며 유쾌했던 기억들이 순서대로 재생되기 때문이다.
신화의 서막을 열었던 6월4일. 폴란드와의 첫 경기를 3시간 앞두고 당시 김형룡 대표팀 지원팀장이 FIFA경기감독관의 눈을 피해 양쪽 골대에 소주를 뿌리며 승리를 기원하는 간절한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황선홍과 유상철의 멋진 골로 비원의 월드컵 첫 승을 국민들에게 선물하며 기분좋은 추억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이어 6월10일 미국전(1-1무)은 황선홍의 핏빛투혼, 6월14일 포르투갈전(1-0승)은 박지성의 결승골 세리머니, 6월18일 이탈리아와 16강전(2-1승)은 안정환의 골든골과 히딩크 감독의 “나는 아직 배고프다(I'm still hungry)”,
6월22일 스페인과 8강전은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 홍명보의 함박웃음 등으로 이어진다.
한국축구가 빚어낸 ‘6월의 드라마’는 황홀함의 연속이었다.
한반도를 붉은 물결로 수놓으며 펼쳤던 길거리 응원은 장엄하고 질서있게 진행돼 지구촌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앞에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얼싸안고 기쁨을 함께 나누고, 같이 눈물도 흘렸다. 축구를 통해 국민들이 하나로 통합된 것이다.
그때의 태극전사들은 어느덧 40~50대 중년에 접어들었다.
이들 가운데 유상철과 연습생 멤버로 합류했던 여효진이 암으로 유명을 달리해 가슴이 아프다. 나머지 멤버들은 지도자나 해설자 또는 행정가로 변신해 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돌아보면 불가능에서 ‘기적’을 연출했던 역사적 현장을 함께 했던 환희와 감동은 내 삶을 탄력있게 해주는 자양분이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조용히 꺼내 음미하면 위안과 용기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때마침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U-20월드컵에서 ‘리틀 태극전사’들이 선전을 펼치며 6월의 붉은 함성을 재현하고 있다.
U-20대표팀 김은중 감독은 선수로 출전한 1999년 나이지리아 대회에서 조별리그 최하위 탈락의 수모를 겪었지만 지도자로서 8강에 오르며 멋지게 반전을 이뤄냈다. 참으로 6월은 축구로 인해 달콤하고 행복한 달이다.
〈나영무 솔병원 원장〉
-10편에 계속-
출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7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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