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무 박사의 '월드컵 Again 2002'] ④ 박지성 포옹에 대한 히딩크의 선물은
솔병원
2022.02.2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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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이 나빠도 이름있는 선수를 기용할까? 아니면 명성은 떨어져도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뛰게 할까.’
축구 감독들의 고민 가운데 하나다. 대부분 전자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뭔가 해낼 것 같은 미련이 크게 작용해서다. 하지만 히딩크는 달랐다. 철저히 실력과 컨디션 위주로 선수를 기용했다. 바로 박지성 ‘무명 신화’ 탄생의 배경이다.
2001년 1월 박지성은 J2-리그 교토상가 소속이었다. 그가 히딩크팀에 선발됐을 때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저 백업 요원 정도로 여겼다. 대표팀이 울산에서 첫 연습경기를 치렀다. 한겨울이라 경기장 측면에는 살얼음이 끼었지만 박지성은 태클을 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플레이를 펼쳤다. 이를 유심히 지켜본 히딩크는 “에너제틱(energetic)”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감독과의 첫 만남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특히 박지성이 히딩크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체력이었다. 무엇보다도 심폐지구력이 뛰어났다. 당시 검사를 했는데 일반인의 경우 맥박수가 60 정도인데 박지성은 40이었다. 숫자가 적을수록 같은 양의 산소를 가지고도 더 많은 운동량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자동차로 치면 연비가 매우 뛰어난 것이다. 이 수치는 마라토너 황영조와 같은 수준이다. 박지성이 대표팀 내에서 최고의 활동량을 자랑하는 이유였다.
훈련과 경기에서 박지성은 잔꾀를 부리지 않고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투입했다. 볼을 빼앗기면 곧바로 수비하고 압박했다. 상대의 강한 압박에 동료가 고립되면 쏜살같이 뛰어가 공간을 만들어 줬다. 또한 볼을 갖지 않았을 때 지능적인 움직임으로 동료가 편하게 플레이 할 수 있도록 헌신했다. 히딩크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표팀 막내로서 숙소 생활도 모범적이었다. 식사가 맛이 없더라도 일정량은 꼭 섭취했고, 규칙적인 수면으로 신체리듬을 잘 유지했다. 그래서 잔 부상이 거의 없었다. 설령 작은 부상을 당하더라도 치료와 재활에 능동적으로 임하는 등 자기관리가 뛰어났다.
박지성에 대한 두터운 믿음 때문이지 히딩크는 새로운 선택을 했다. 원래 대표팀 선발 당시 박지성의 포지션은 오른쪽 윙백이었다. 간간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다. 하지만 히딩크는 박지성을 오른쪽 윙어 공격수로 변신시켰다.
월드컵 본선에서 유럽의 강호와 대등한 경기를 위해서는 공격라인에서 전진 압박을 통해 상대 공격의 1차 흐름을 끊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동국과 안정환 등이 기술은 좋아도 수비력이 떨어지는 점도 한몫을 했다.
히딩크는 안정환이 평가전에서 두 골이나 넣었을 때도 “수비에 가담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질책할 정도였다.
박지성은 뛰어난 지능과 남다른 감각으로 디펜시브 윙어 (Defensive Winger)로서 히딩크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박지성이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하기 전까지 주전이었던 이천수와 차두리는 박지성의 백업 요원으로 밀려났다. 당시 히딩크는 “한국 선수들은 전술을 스펀지처럼 잘 빨아들인다”고 칭찬을 했는데 그 중심엔 박지성이 있었다.
그리고 박지성은 포르투갈과의 예선 3차전에서 시원한 왼발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한국을 16강에 올려놓았다. 박지성은 골을 넣은 뒤 벤치를 향해 뛰어가 히딩크와 감동의 포옹 세리머니를 했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폴란드전에서 첫 골을 넣은 황선홍이 히딩크를 지나쳐 박항서 코치와 세리머니를 나눴다. 히딩크로선 다소 서운했을 수 있었지만 선수가 기쁨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나온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러나 일부에선 ‘히딩크 왕따설’로 해석하기도 했다. 선수들로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에 골을 넣을 때 ‘히딩크에게 가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묘하게도 주인공은 박지성이었다. 옆에서 지켜봤을 때 그런 마음도 있었지만 박지성의 포옹은 히딩크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박지성이 벤치를 향해 달려갈 때 히딩크는 최진한 코치 등이 환호하자 애제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으로 ‘비켜’하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순진한 아이 같았다.
나중에 유상철이 “나도 지성이처럼 히딩크에게 세리머니를 했으면 유럽에 갔을 것이다”고 농담을 건넬 만큼 박지성의 세리모니는 많은 화제를 뿌렸다.
애제자의 진심이 담긴 마음을 받은 히딩크는 화끈한(?) 선물로 답례를 톡톡히 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안정환의 극적인 골든골로 8강을 확정하자 벤치는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서로 뒤엉켜 기쁨을 나눴다.
히딩크는 차두리, 안정환, 홍명보 등 고생한 선수들과 포옹을 나누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박지성을 껴안은 뒤 볼에 애정이 넘치는 뽀뽀를 해줬다. 히딩크의 특별한 선물을 받은 것은 박지성이 유일할 만큼 그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히딩크와 박지성이 부자 관계로 착각할 만큼 정겨워 보이는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박지성을 통해 ‘선수는 실력과 성실성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브라질 월드컵에 나서는 23명의 전사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선수로서 운도 중요하지만 결국 행운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에. 박지성을 추억하며 브라질에서 홍명보팀의 선전을 기원한다.
나영무(솔병원 원장)
축구 감독들의 고민 가운데 하나다. 대부분 전자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뭔가 해낼 것 같은 미련이 크게 작용해서다. 하지만 히딩크는 달랐다. 철저히 실력과 컨디션 위주로 선수를 기용했다. 바로 박지성 ‘무명 신화’ 탄생의 배경이다.
2001년 1월 박지성은 J2-리그 교토상가 소속이었다. 그가 히딩크팀에 선발됐을 때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저 백업 요원 정도로 여겼다. 대표팀이 울산에서 첫 연습경기를 치렀다. 한겨울이라 경기장 측면에는 살얼음이 끼었지만 박지성은 태클을 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플레이를 펼쳤다. 이를 유심히 지켜본 히딩크는 “에너제틱(energetic)”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감독과의 첫 만남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특히 박지성이 히딩크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체력이었다. 무엇보다도 심폐지구력이 뛰어났다. 당시 검사를 했는데 일반인의 경우 맥박수가 60 정도인데 박지성은 40이었다. 숫자가 적을수록 같은 양의 산소를 가지고도 더 많은 운동량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자동차로 치면 연비가 매우 뛰어난 것이다. 이 수치는 마라토너 황영조와 같은 수준이다. 박지성이 대표팀 내에서 최고의 활동량을 자랑하는 이유였다.
훈련과 경기에서 박지성은 잔꾀를 부리지 않고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투입했다. 볼을 빼앗기면 곧바로 수비하고 압박했다. 상대의 강한 압박에 동료가 고립되면 쏜살같이 뛰어가 공간을 만들어 줬다. 또한 볼을 갖지 않았을 때 지능적인 움직임으로 동료가 편하게 플레이 할 수 있도록 헌신했다. 히딩크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표팀 막내로서 숙소 생활도 모범적이었다. 식사가 맛이 없더라도 일정량은 꼭 섭취했고, 규칙적인 수면으로 신체리듬을 잘 유지했다. 그래서 잔 부상이 거의 없었다. 설령 작은 부상을 당하더라도 치료와 재활에 능동적으로 임하는 등 자기관리가 뛰어났다.
박지성에 대한 두터운 믿음 때문이지 히딩크는 새로운 선택을 했다. 원래 대표팀 선발 당시 박지성의 포지션은 오른쪽 윙백이었다. 간간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다. 하지만 히딩크는 박지성을 오른쪽 윙어 공격수로 변신시켰다.
월드컵 본선에서 유럽의 강호와 대등한 경기를 위해서는 공격라인에서 전진 압박을 통해 상대 공격의 1차 흐름을 끊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동국과 안정환 등이 기술은 좋아도 수비력이 떨어지는 점도 한몫을 했다.
히딩크는 안정환이 평가전에서 두 골이나 넣었을 때도 “수비에 가담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질책할 정도였다.
박지성은 뛰어난 지능과 남다른 감각으로 디펜시브 윙어 (Defensive Winger)로서 히딩크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박지성이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하기 전까지 주전이었던 이천수와 차두리는 박지성의 백업 요원으로 밀려났다. 당시 히딩크는 “한국 선수들은 전술을 스펀지처럼 잘 빨아들인다”고 칭찬을 했는데 그 중심엔 박지성이 있었다.
그리고 박지성은 포르투갈과의 예선 3차전에서 시원한 왼발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한국을 16강에 올려놓았다. 박지성은 골을 넣은 뒤 벤치를 향해 뛰어가 히딩크와 감동의 포옹 세리머니를 했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폴란드전에서 첫 골을 넣은 황선홍이 히딩크를 지나쳐 박항서 코치와 세리머니를 나눴다. 히딩크로선 다소 서운했을 수 있었지만 선수가 기쁨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나온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러나 일부에선 ‘히딩크 왕따설’로 해석하기도 했다. 선수들로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에 골을 넣을 때 ‘히딩크에게 가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묘하게도 주인공은 박지성이었다. 옆에서 지켜봤을 때 그런 마음도 있었지만 박지성의 포옹은 히딩크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박지성이 벤치를 향해 달려갈 때 히딩크는 최진한 코치 등이 환호하자 애제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으로 ‘비켜’하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순진한 아이 같았다.
나중에 유상철이 “나도 지성이처럼 히딩크에게 세리머니를 했으면 유럽에 갔을 것이다”고 농담을 건넬 만큼 박지성의 세리모니는 많은 화제를 뿌렸다.
애제자의 진심이 담긴 마음을 받은 히딩크는 화끈한(?) 선물로 답례를 톡톡히 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안정환의 극적인 골든골로 8강을 확정하자 벤치는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서로 뒤엉켜 기쁨을 나눴다.
히딩크는 차두리, 안정환, 홍명보 등 고생한 선수들과 포옹을 나누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박지성을 껴안은 뒤 볼에 애정이 넘치는 뽀뽀를 해줬다. 히딩크의 특별한 선물을 받은 것은 박지성이 유일할 만큼 그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히딩크와 박지성이 부자 관계로 착각할 만큼 정겨워 보이는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박지성을 통해 ‘선수는 실력과 성실성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브라질 월드컵에 나서는 23명의 전사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선수로서 운도 중요하지만 결국 행운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에. 박지성을 추억하며 브라질에서 홍명보팀의 선전을 기원한다.
나영무(솔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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