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무 박사의 '월드컵 Again 2002'] ① '아버지' 홍명보와 '어머니' 황선홍
솔병원
2022.02.2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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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국가간에 벌이는 ‘총성 없는 전쟁터’다. 가슴에 달린 태극마크를 보면 아직도 심장이 뛴다. 1996년 축구대표팀 주치의를 맡아 2013년까지 17년 동안 태극전사들과 함께 웃고 울었다.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4강 신화를 달성하며 한반도를 춤추게 했던 2002년 한·일월드컵이다.
이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태극호는 최종엔트리를 확정하고 브라질을 향한 여정을 힘차게 시작했다. 주치의로서 바라본 12년 전 성공 요인과 감동의 역사를 차분히 음미하며 브라질에서 태극호의 선전을 기원한다.
황선홍과 홍명보. 1990년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와 수비수다. 언론에서는 ‘H-H라인’으로 표현했다. 2002년 당시 우리의 월드컵 첫 승은 황선홍의 발에서 시작됐고, 4강 신화는 홍명보의 발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그야말로 환상 궁합이었다.
하지만 ‘H-H라인’은 히딩크 감독 부임 초기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당시 히딩크는 선·후배간의 위계질서가 엄격했던 한국축구의 틀을 확 바꾸고 싶어 했다.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 팀으로 변화를 꾀했다. 이런 히딩크의 눈에 서른이 넘었던 두 노장은 탐탁치 않았다. 특히 후배들이 눈치 볼 정도로 카리스마가 대단했던 홍명보를 향해 “미디어가 만든 스타”라며 시선이 유독 차가웠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히딩크의 스타 선수 길들이기 차원이었는데 당시는 냉기가 흘러넘쳤다.
홍명보는 감독의 냉대속에 부상까지 겹쳐 2001년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하차했다. 히딩크는 이후 9개월 가량 홍명보를 대표팀에 부르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박항서 코치가 “팀의 무게중심을 잡아줄 홍명보가 필요하다”며 감독에게 간곡히 요청했고, 히딩크는 못 이긴 척 받아들였다.
당시 코칭스태프는 홍명보에게 “월드컵에서 벤치 멤버일 수도 있다”는 분위기를 전해줬다. 홍명보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만도 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백의종군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2002년 3월 스페인 라망가 전지훈련에 합류했다.
태극마크를 다시 찾은 홍명보의 눈빛은 독기로 가득 찼다. 홍명보의 재합류로 그때까지 패배와 무승부를 밥 먹듯 했던 대표팀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홍명보는 황선홍과 함께 후배들을 독려하며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수습해 나갔다.
말보다는 행동이었다. 히딩크는 파워프로그램으로 불린 피지컬 트레이닝을 통해 선수들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입에서 단내나는 훈련이었지만 두 노장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선수들의 체력테스트에서 1위는 차두리나 이천수 등 젊은 선수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두 노장들도 항상 ‘Top 5’에 빠지지 않고 진입하는 근성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에 히딩크의 마음도 서서히 변해갔다. 그리고 김태영이 찼던 주장 완장을 홍명보에게 안겨줬다.
홍명보는 묵묵히 후배들을 이끌었다. 필요한 말 외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 쉽게 다가서지 못할 정도로 무뚝뚝했지만 후배들은 홍명보가 말을 하면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 황선홍은 후배들을 살갑게 챙겼다. 자신의 월드컵 경험담 등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며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했다. 엄한 ‘아버지’ 홍명보와 자상한 ‘어머니’ 황선홍의 역할이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팀은 두 노장을 중심으로 갈수록 탄탄해졌다. 하지만 위기도 있었다. 바로 주전경쟁 스트레스다. 월드컵 개막이 다가오자 베스트 11에서 밀린 멤버들이 의기소침하면서 팀 분위기가 예민해진 것이다. 이때도 두 노장이 나섰다. 홍명보는 식사 시간 때 일부러 비주전 선수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황선홍도 팀을 위한 희생정신을 강조하며 후배들을 뒤에서 조용히 다독였다.
당시 황선홍은 조부상을 당했음에도 빈소를 찾아가지 않고 마지막 훈련에 전념했다. 그리고 폴란드와의 첫 경기를 사흘 앞두고 갑자기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회를 마치고 발표해도 되는 사안이었지만 그는 월드컵에 배수진을 치고 임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주기 위해 미리 밝힌 것이다.
결국 두 노장의 솔선수범은 후배들의 머리에 강한 정신력과 함께 가슴에 뜨거운 투쟁심을 심어주며 ‘월드컵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자’는 한마음으로 뭉치게 했다.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선 홍명보가 골을 성공시킨 뒤 황선홍과 진한 포옹을 나눈 장면은 너무 아름다웠고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들 콤비의 헌신은 이후 ‘주장 박지성-정신적 지주 이영표’로 이어지며 남아공월드컵에서 첫 원정 16강 진출의 쾌거로 이어졌다.
이제 선수에서 감독으로 변신해 브라질로 가는 홍명보는 지난 8일 23명의 최종엔트리를 발표했다. 최종엔트리에서 선수 한 명의 이름이 나의 눈에 크게 들어왔다. 최고참 수비수 곽태휘다. 홍명보 감독의 의중이 읽혀졌다. 곽태휘와 함께 선임될 주장에게서 12년 전 ‘H-H라인’의 향기를 맡게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나영무(솔병원 원장)
-축구대표팀 주치의(1996년~2013년)로 올림픽팀과 A대표팀 등 102경기 의무지원.
-2009년 이집트 U-20월드컵에 홍명보 감독과 동행
-현재 ‘피겨여왕’ 김연아, ‘골프여제’ 박세리 전담 주치의
-대한빙상경기연맹과 KLPGA 공식 주치의로 활동
이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태극호는 최종엔트리를 확정하고 브라질을 향한 여정을 힘차게 시작했다. 주치의로서 바라본 12년 전 성공 요인과 감동의 역사를 차분히 음미하며 브라질에서 태극호의 선전을 기원한다.
황선홍과 홍명보. 1990년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와 수비수다. 언론에서는 ‘H-H라인’으로 표현했다. 2002년 당시 우리의 월드컵 첫 승은 황선홍의 발에서 시작됐고, 4강 신화는 홍명보의 발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그야말로 환상 궁합이었다.
하지만 ‘H-H라인’은 히딩크 감독 부임 초기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당시 히딩크는 선·후배간의 위계질서가 엄격했던 한국축구의 틀을 확 바꾸고 싶어 했다.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 팀으로 변화를 꾀했다. 이런 히딩크의 눈에 서른이 넘었던 두 노장은 탐탁치 않았다. 특히 후배들이 눈치 볼 정도로 카리스마가 대단했던 홍명보를 향해 “미디어가 만든 스타”라며 시선이 유독 차가웠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히딩크의 스타 선수 길들이기 차원이었는데 당시는 냉기가 흘러넘쳤다.
홍명보는 감독의 냉대속에 부상까지 겹쳐 2001년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하차했다. 히딩크는 이후 9개월 가량 홍명보를 대표팀에 부르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박항서 코치가 “팀의 무게중심을 잡아줄 홍명보가 필요하다”며 감독에게 간곡히 요청했고, 히딩크는 못 이긴 척 받아들였다.
당시 코칭스태프는 홍명보에게 “월드컵에서 벤치 멤버일 수도 있다”는 분위기를 전해줬다. 홍명보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만도 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백의종군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2002년 3월 스페인 라망가 전지훈련에 합류했다.
태극마크를 다시 찾은 홍명보의 눈빛은 독기로 가득 찼다. 홍명보의 재합류로 그때까지 패배와 무승부를 밥 먹듯 했던 대표팀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홍명보는 황선홍과 함께 후배들을 독려하며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수습해 나갔다.
말보다는 행동이었다. 히딩크는 파워프로그램으로 불린 피지컬 트레이닝을 통해 선수들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입에서 단내나는 훈련이었지만 두 노장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선수들의 체력테스트에서 1위는 차두리나 이천수 등 젊은 선수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두 노장들도 항상 ‘Top 5’에 빠지지 않고 진입하는 근성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에 히딩크의 마음도 서서히 변해갔다. 그리고 김태영이 찼던 주장 완장을 홍명보에게 안겨줬다.
홍명보는 묵묵히 후배들을 이끌었다. 필요한 말 외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 쉽게 다가서지 못할 정도로 무뚝뚝했지만 후배들은 홍명보가 말을 하면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 황선홍은 후배들을 살갑게 챙겼다. 자신의 월드컵 경험담 등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며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했다. 엄한 ‘아버지’ 홍명보와 자상한 ‘어머니’ 황선홍의 역할이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팀은 두 노장을 중심으로 갈수록 탄탄해졌다. 하지만 위기도 있었다. 바로 주전경쟁 스트레스다. 월드컵 개막이 다가오자 베스트 11에서 밀린 멤버들이 의기소침하면서 팀 분위기가 예민해진 것이다. 이때도 두 노장이 나섰다. 홍명보는 식사 시간 때 일부러 비주전 선수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황선홍도 팀을 위한 희생정신을 강조하며 후배들을 뒤에서 조용히 다독였다.
당시 황선홍은 조부상을 당했음에도 빈소를 찾아가지 않고 마지막 훈련에 전념했다. 그리고 폴란드와의 첫 경기를 사흘 앞두고 갑자기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회를 마치고 발표해도 되는 사안이었지만 그는 월드컵에 배수진을 치고 임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주기 위해 미리 밝힌 것이다.
결국 두 노장의 솔선수범은 후배들의 머리에 강한 정신력과 함께 가슴에 뜨거운 투쟁심을 심어주며 ‘월드컵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자’는 한마음으로 뭉치게 했다.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선 홍명보가 골을 성공시킨 뒤 황선홍과 진한 포옹을 나눈 장면은 너무 아름다웠고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들 콤비의 헌신은 이후 ‘주장 박지성-정신적 지주 이영표’로 이어지며 남아공월드컵에서 첫 원정 16강 진출의 쾌거로 이어졌다.
이제 선수에서 감독으로 변신해 브라질로 가는 홍명보는 지난 8일 23명의 최종엔트리를 발표했다. 최종엔트리에서 선수 한 명의 이름이 나의 눈에 크게 들어왔다. 최고참 수비수 곽태휘다. 홍명보 감독의 의중이 읽혀졌다. 곽태휘와 함께 선임될 주장에게서 12년 전 ‘H-H라인’의 향기를 맡게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나영무(솔병원 원장)
-축구대표팀 주치의(1996년~2013년)로 올림픽팀과 A대표팀 등 102경기 의무지원.
-2009년 이집트 U-20월드컵에 홍명보 감독과 동행
-현재 ‘피겨여왕’ 김연아, ‘골프여제’ 박세리 전담 주치의
-대한빙상경기연맹과 KLPGA 공식 주치의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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