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영무 박사의 '말기 암 극복기'(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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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 살리는 운동, 스트레칭이 무조건 1번? 천만의 말씀
우리 인생에는 순서가 있다. 순리대로 사는게 행복의 지름길이다.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기본 원칙과 방법을 알고 자신의 몸에 맞게 하면 큰 탈이 없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면 운동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병원 신세다.
내 진료실에도 헬스클럽에서 뛰기 운동부터 하고 바벨을 들다가 어깨를 다친 중년 남성, 동영상 속의 고난도 운동을 따라하다가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젊은 여성들이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의욕만 앞서 무리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 원인은 운동 전에 몸을 충분하게 풀어주지 않았고, 체력이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딱딱한 엿이 부러지는 것처럼 몸의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동하다가 다친 것이다.
암의 늪에서 나를 구한 재활운동의 출발점은 바로 몸을 부드럽게 해주는 유연성이다.
이 운동에도 지켜야 할 순서가 있다. 흔히 몸을 풀 때 1번으로 스트레칭을 떠올린다.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굳은 조직을 처음부터 스트레칭으로 강하게 늘려주면 근육, 힘줄 및 인대 등이 찢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칭에 앞서 몸의 근육과 관절 등을 서서히 풀어주는 것이 첫번째다. 나는 맨손체조를 통해 몸을 부드럽게 했다.
40대 이상 중년이면 향수를 느끼는 추억의 국민체조다.
12가지 동작으로 이뤄진 국민체조는 자신의 몸 상태에 맞춰 동작을 선택할 수 있고, 적당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좋다.
나는 1번 팔 앞뒤로 들어 옆으로 내리기, 4번 목 휘돌리기, 5번 가슴 젖히기, 6번 몸 옆으로 굽히기, 7번 몸 굽히고 젖히기, 8번 몸 옆으로 틀기, 9번 노젓기 운동을 중심으로 했다.
국민체조는 전신 근육을 다 쓸 수 있도록 고안된 체조다.
유연성 증가는 물론 신진대사를 촉진하면서 근력 강화에도 좋고, 뭉친 근육을 푸는데 도움이 된다.
체조로 굳은 관절을 앞뒤 좌우로 움직이고 부드럽게 풀어준 뒤 스트레칭으로 넘어가는 것이 모범답안이다.
스트레칭은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갖고 천천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짧은 시간에 하면 근육이 수축돼 뻣뻣해 질 수 있으므로 한 동작 당 30초에서 60초 가량 해주는 것이 좋다.
강하고 빠르게 반동을 주면서 스트레칭을 하는 경우 근육이 찢어질 수 있기에 전문 운동선수가 아니면 안하는 것이 좋다.
특히 암환자는 신체활동량이 적고, 눕거나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기에 두 부위의 스트레칭에 신경써야 한다.
잘 굳는 골반 근육, 수술 후 자세 불안정으로 근육 뭉침이 자주 발생하는 목․어깨 부위다.
스트레칭을 할 때는 아프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살짝 아플까 말까 하는 정도는 괜찮다.
체조와 스트레칭으로 관절을 잘 구부러지게 하고, 근육과 힘줄을 잘 늘어나게 해주는 것이다. 이것을 준비운동 즉 ‘워밍업’이라고 한다.
또한 운동을 마친 후에도 체조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면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된다.
두 동작을 통해 몸의 예열을 끝냈으면 걷기로 넘어간다.
암환자에게 걷기는 부작용 없는 치료제이자 가장 안전한 유산소 운동이다. 걷기는 발목, 무릎, 엉덩이, 척추, 어깨 등 모든 관절이 골고루 움직여 몸을 균형있게 해준다.
또한 인대와 힘줄을 튼튼하게 해주고 하체 근력도 강화시켜 준다.
꾸준하게 걸으면 골밀도도 높아져 골다공증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특히 혈액순환 향상에 도움이 된다.
혈액은 혈관을 통해 우리 몸에 신선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한다. 근육 속에는 혈관이 많은데 걷기는 근육을 움직이면서 혈액을 온몸으로 골고루 퍼지게 한다.
암환자에게 면역세포는 훌륭한 보디가드다.
백혈구에는 다양한 면역세포들이 존재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암세포 저격수’로 불리는 자연살해세포(NK cell , natural killer cell)다.
걷기는 몸속 면역세포의 활성화를 도와주기에 암재활의 키포인트다.
암환자에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한 삶으로의 복귀에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하루 7천보 정도를 꾸준히 걸었다.
주중과 주말로 나눠 다양한 코스에 나의 발자취를 남겼다.
평일에는 한강시민공원과 병원 인근 서울식물원 길을 주로 걸었다.
30분 정도 걸으면 약간 땀이 나고, 잡념도 없어지면서 몸에 생동감이 느껴졌다.
주말에는 여행을 겸해 자연친화적인 길을 찾아나섰다.
오색약수를 거쳐 들어가는 점봉산 주전골, 가평 잣향기푸른숲길,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 백담사 계곡길, 여러 자연휴양림, 서오릉, 동네 공원 등을 걸으며 암세포의 공격을 버텨내는 힘을 길러나갔다.
걷기는 나에게 유산소운동 그 이상이었다.
암환자가 죽는 것은 암 때문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다.
또한 혼자 집에만 있으면 아픈 것만 떠올라 더 우울해진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와 걸으면 공포와 우울감은 눈녹듯 사라진다.
일반 사람들과 걷는 대열에 함께하며 나는 활기찬 그들의 모습이 참 부러웠다. 동시에 “암세포와의 싸움을 이겨내 그들처럼 정상적인 삶으로 빨리 돌아가자”고 내 자신을 다독이곤 했다.
나에게 걷기는 기분좋고 느낌있는 삶의 유쾌한 자극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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