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심장마비 딛고 기적적으로…‘韓드록바’ 일으킨 보이지 않는 손 [‘재활 명의’ 나영무의 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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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마비 딛고 기적적으로…‘韓드록바’ 일으킨 보이지 않는 손 [‘재활 명의’ 나영무의 진담]
‘재활 명의’ 나영무의 진담 (진료실 담소)
칼럼 5) 축구선수 신영록과 어버이날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축구 선수가 있다.
야생마처럼 그라운드를 누비며 ‘한국의 드록바’로 불렸던 신영록이다.
그는 2011년 5월 8일 K리그 경기 도중 부정맥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46일만에 기적처럼 의식을 찾았지만 정상인의 삶은 힘들었다.
뇌손상과 함께 세밀한 근육을 자신의 의지대로 쓸 수 없어서다.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재활치료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 1년간 입원을 거쳐 2012년 가을부터 5년간 재활치료를 받았던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료 중단을 통보받은 것이다.
입원 후 3개월이 지나면 병원측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할 수 있는 의료비가 40%나 삭감되기 때문이다.
장기 입원에 따른 보험 재정 낭비를 막기 위한 것인데 만성 재활 환자들로서는 난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루 아침에 치료받을 병원이 없어지자 그의 부모님은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당시 필자는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신영록과는 청소년대표팀부터 알고 지내던 터였다.
그의 딱한 사정을 전해듣고 윤영설 의무위원장(당시 연세대의료원 미래전략실장)과 머리를 맞댔다.
다행히 주 2회 연세대의료원 재활병원에서 인지치료와 언어 및 작업치료 등을, 주 1회 솔병원에서 스포츠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2017년 6월부터 그와 나의 동행이 시작됐다.
그의 상태는 의사소통은 되지만 말투는 어눌했고, 방금 대화를 나눴던 이야기들도 금세 잊어버렸다. 특히 몸의 균형감각이 떨어져 활동도우미 없이 걷는 것도 어려웠다.
그때 그의 부모님을 병원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오랜기간 아들의 투병 뒷바라지를 하느라 피곤해 보였지만 눈빛만은 맑고 빛났다.
무엇보다 아들이 정상적인 삶을 반드시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같은 믿음 하나로 부모님은 기꺼이 아들의 그림자가 됐다.
아들의 손이 되어 식사를 도왔고, 병원을 오갈 때는 아들의 발이 됐다.
또한 집에서는 윗몸일으키기, 자전거타기 등 체력 훈련의 파트너였고, 병원 재활치료 때에는 “우리 아들! 잘한다 잘해”라는 응원의 목소리로 언제나 함께 했다.
사실 그의 재활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다. 회복되는 상태가 아주 더딘데다 정도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장기전이기에 환자의 보호자들은 건강한 의지와 함께 불안해 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날 진료실에서 부모님과 담소를 나누다 그의 아버지가 “원장님, 처음엔 무척 힘들었지만 ‘사람이 살면서 이럴 수도 있구나’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안해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라는 희망과 함께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힘이 나네요”라는 말에서 깊은 울림을 받았다.
아들을 위한 사랑과 무한 헌신이 느껴졌다.
어쩌면 오랜 시간 병마와 싸우는 아들을 든든히 지탱해 준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상태는 차츰차츰 좋아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위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
혼자서 신발을 신고, 혼자서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고, 대화도 또렷하게 나누는 등 혼자 걷는 것조차 버거웠던 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호전된 것이다.
돌아보면 어버이날에 그라운드에 쓰러졌던 아들은 부모의 가슴엔 불효를 새겨넣었다. 그 순간 부모님의 시간도 함께 정지됐다.
하지만 부모는 아들을 위해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며 ‘불효와 절망’이라는 단어를 지워나갔다. 대신 아들의 가슴에 ‘희망’을 불어넣으며 작은 기적을 연출했다.
햇살좋은 5월이 왔고, 다음주면 어버이날이다. 우리들의 ‘부모님’은 정말 위대하다.〈나영무 솔병원 원장〉
-6편에 계속-
출저: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278092?lfrom=kak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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