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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수술, 36번 항암치료로 말기암 이겨낸 의사... "이젠 나눔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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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수술, 36번 항암치료로 말기암 이겨낸 의사... "이젠 나눔의 삶을"

입력
2022.03.09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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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암 4기에 간ㆍ폐로 암세포가 전이돼 3년 동안 6번의 수술과 36번의 항암치료를 받고 암을 극복한 나영무 솔병원 원장이 서울 강서구 솔병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직장암 4기에 간ㆍ폐로 암세포가 전이돼 3년 동안 6번의 수술과 36번의 항암치료를 받고 암을 극복한 나영무 솔병원 원장이 서울 강서구 솔병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직장암 말기에 간ㆍ폐로 암세포 전이. 6번의 수술과 36번의 항암치료.’

어느 날 당신이 치질 치료를 받다가 의사에게 이 같은 진단을 들었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 아마 대부분은 엄습해오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치료 받기를 거부하거나 치료를 시작했더라도 중도 포기했을 것이다. 너무도 길고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과 낮은 생존율에 얼마 남지 않을 수 있는 삶을 허비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특히 환갑을 바라보는 초로의 나이라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스럽고 외로운 말기암과의 싸움을 모두 이겨내고 이제는 어려운 이웃들과의 ‘나눔’을 준비하는 이가 있다.

스포츠재활 전문의인 나영무(60) 솔병원 원장의 얘기다. 축구 국가대표팀과 김연아, 박세리, 윤성빈 등 스포츠 스타들의 재활 치료 주치의로 유명했던 나 원장은 2018년 8월 대변을 보는 것이 수월하지 않자 치질 때문이겠거니 생각하고 수술을 받았다.

그는 수술 후에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장 내시경 등의 검사를 받았다. 암세포가 간은 물론 폐까지 전이된 직장암 말기(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자신이 의사였기에, 더욱이 술과 육식을 즐기지 않았기에 그는 직장암이라는 말에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간의 절반 이상에 넓게 퍼져 있는 암세포들의 사진을 눈으로 보고 나서야 생존 확률 5% 미만인 상태가 현실로 다가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그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수술과 항암약물치료(항암치료), 방사선 치료가 주는 엄청난 고통과 후유증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수 밖에 없었다.

암세포 크기가 너무 커 곧바로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7번의 항암치료로 암세포의 크기를 줄인 뒤 그는 수술대에 올랐다. 간을 75%나 떼어냈고, 직장도 10㎝를 잘라냈다. 또다시 5차례의 항암치료를 받고 나서는 폐 일부도 절제했다. 이후 그는 8번의 항암치료를 이겨냈다. 의사인 그도 “항암치료 날이면 도살장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제발 이번이 마지막 주사였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고 말했다.

이젠 살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그 순간 간과 폐에서 또 암세포가 발견됐다. 나 원장은 “재발 됐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말기암 진단을 받았을 때보다 그때가 더 고통스럽고 두려웠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직장암 4기에 간ㆍ폐로 암세포가 전이돼 3년 동안 6번의 수술과 36번의 항암치료를 받고 암을 극복한 나영무 솔병원 원장이 서울 강서구 솔병원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직장암 4기에 간ㆍ폐로 암세포가 전이돼 3년 동안 6번의 수술과 36번의 항암치료를 받고 암을 극복한 나영무 솔병원 원장이 서울 강서구 솔병원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마음을 다잡고 또다시 간과 폐 일부를 떼어냈지만 ‘암세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폐에서 한번 더 암세포가 발견됐다. 나 원장은 2번째 재발에는 “그래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3년 동안 6번의 수술(직장 1번, 간 2번, 폐 3번)과 무려 36차례에 걸친 항암치료를 버텨 내고 마침내 지난해 12월 몸 속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완전 관해(완전 완화) 판정을 받았다.

나 원장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3년의 시간을 이겨 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나 원장은 긍정적인 마인드와 꾸준한 운동을 가장 먼저 꼽았다. 그는 긍정적인 생각과 강한 의지를 가진 환자들의 회복이 더 빨랐던 것을 30년 의사 생활 동안 직접 체험을 했고, 이를 자신의 암 치료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나 원장은 특히 운동은 암 극복을 위한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스포츠재활 전문의로 쌓은 노하우를 암 극복을 위한 운동에 접목시켰다. 재활 운동의 목적은 체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픈 몸을 더 빨리 회복시키는 것에 있다 보니 운동의 종류와 강도, 빈도 등을 치료 과정에 따라 달리해 조절했다. 나 원장은 “미국과 일본은 암 환자를 위한 재활이 활성화 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초기 단계”라며 “내가 암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동안 암 재활 병원의 필요성을 거듭 느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나 원장은 완전 관해 판정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처럼 고통 받고 있는 암환자들을 위한 체계적 ‘암 재활’ 프로그램의 시작이었다. 암을 극복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을 키우는 방법 등 나 원장이 가지고 있던 암환자 맞춤형 운동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희망을 끈을 놓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병원 수익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은 ‘재능 기부’에 가깝다.

직장암 4기에 간ㆍ폐로 암세포가 전이돼 3년 동안 6번의 수술과 36번의 항암치료를 받고 암을 극복한 나영무 솔병원 원장이 서울 강서구 솔병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직장암 4기에 간ㆍ폐로 암세포가 전이돼 3년 동안 6번의 수술과 36번의 항암치료를 받고 암을 극복한 나영무 솔병원 원장이 서울 강서구 솔병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덤으로 사는 인생을 통해 배운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나 원장은 의료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사단법인 설립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도 강서구 등 지역 의료취약계층을 위해 매달 10여명씩 1년이면 1억원 이상의 지원을 해온 나 원장이었지만 ‘판’을 키우기로 했다. 서울 전역으로 범위를 확대하고 재능 기부와 장비 원가 공급 등을 통해 의료 지원이 필요한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의 손길을 내밀 예정이다.

나 원장은 이제는 5년 동안 재발하지 않아야 들을 수 있는 ‘완치’ 판정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그는 자신처럼 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많은 이들을 향해 “고통스럽고 외로운 여정이었지만 인간은 막상 닥치게 되면 견뎌내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아무리 항암치료가 아프고 힘들어도 끝은 있기 마련이니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조금만 더 참고 암과 싸워 이겨내길 바란다”고 외쳤다.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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