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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률 5% 이긴 그의 조언…암환자 마음근육 키우는 십계명 [나영무 박사의 '말기 암 극복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나영무 박사의 '말기 암 극복기' (10)  

TV에서 ‘골 때리는 그녀들’이란 프로그램을 보았다.
선수들의 축구를 향한 노력과 열정, 진정성, 그리고 A매치 못지 않게 박진감 넘치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축구국가대표팀 주치의 시절, 지인들은 나에게 빅매치를 직관할 수 있어 좋겠다며 많이 부러워했다.

하지만 실상은 90분내내 태극전사들의 발과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어야 하기에 경기를 제대로 관전하지 못한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그런 부담을 벗어던지고 축구의 재미를 맛보게 해준다. 여자 선수들의 투지만큼 나를 사로잡은 것은 경기시간 내내 ‘집중’을 외치며 서로를 격려하는 구호였다.
특히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커다란 외침이 내 심장에 시원하게 꽂혔다. 마치 암과 싸우고 있는 나를 위한 응원처럼 들렸다.

탄탄한 마음 근육과 튼튼한 몸 근육의 ‘환상 듀오’는 암세포를 무찌르는 최고의 무기다.
사실 몸과 마음은 이어져있다. 마음이 강하면 몸도 강하고, 몸이 강하면 마음도 강해지는 것이다.
특히 암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대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확 달라진다. 마음 근육을 탄탄하게 해주는 나만의 십계명을 공개한다.

1.‘암 선고’를 지우고 ‘암 진단’으로 쓰기
과거 한때 ‘암=죽음’이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했다. 그래서 암을 사형선고에 빗대 ‘암 선고’를 받았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선고라는 단어는 ‘끝’이나 ‘최종’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 어둡다.
반면 병명을 말하는 ‘진단’이란 용어는 진행형에 가깝다.
진단 후 치료와 수술 등을 잘 받으면 얼마든지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암 진단’과 함께 ‘암에 걸렸다’는 말도 함께 쓴다.
우리가 감기에 걸린 뒤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것처럼 암에 걸려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2. 하루에 한 번씩 고마운 마음 갖기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으면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하루를 살아가는 에너지를 얻는 것 같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씩 고마운 마음을 갖기로 했다.
우선 내 주위에서부터 하나씩 찾아 나갔는데 가족은 물론 솔병원 식구들이 생각났다.
내가 투병으로 자리를 비우고,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많이 힘들었을텐데 제몫을 다해줘 고마웠다.
또한 나와 병원 환자들에게 매일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주는 영양사와 식당 여사님들도 너무 감사했다.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 나 역시 고마운 대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지가 솟아오르고, 건강 관리에 각별해진다.

3. ‘절망’ 대신 ‘희망’, ‘부정’ 대신 ‘긍정’, ‘분노’ 대신 ‘용기’  
암 진단을 통보받으면 ‘왜 하필 나인가. 그저 열심히 살아왔는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등 절망과 부정, 그리고 분노로 가득 찬다.
이런 상황에서 암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까지 겹치면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대의학으로 암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과 ‘모든 게 잘 될거야, 잘 할 수 있을거야’는 긍정의 마음으로 나를 독려한 뒤 내 안의 분노를 ‘암과 싸워 이겨내겠다’는 용기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4. 자신이 걸린 암에 대해 공부하기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다. 내가 걸린 암에 대한 정체와 치료법과 약물 등에 대해 공부했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암 관련 책자, 의학 교과서, 암 관련 일반서적 등을 보면서 정보를 차곡차곡 수집했다.
특히 항암 약물치료의 부작용,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에 대해 치료와  관리, 그리고 예방하는 방법을 찾았다. 부작용 관리는 치료 받으려는 의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암 관련 치료법이 매우 빠르게 발전해 최신 내용은 다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궁금한 사항들은 주치의 진료나 면담 때 물으면서 치료의 중심을 잡아나갔다.

5. 좋은 말만 귀로 골라 마음의 온도 높이기  
암환자에게 귀는 소중하다.
속상하고 쓸데없는 말을 듣게 되면 반대편 귀로 흘려보내고, 영양가 넘치는 좋은 말만 골라내 마음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 경우 지인이나 진료실을 찾는 환자분들이 “원장님, 얼굴색이 너무 좋으세요” “원장님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힘내서 완치하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될거예요, 재발하지 않을 거예요” 등 많은 격려를 받는다.
가벼운 인사말이지만 그 순간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금방이라도 나을 것처럼 몸의 면역력도 쑥 올라간 느낌이 든다.

6. ‘청바지!’ 지금 이 순간을 적절하게 즐기기
‘청춘은 바로 지금’이다. 암 환자라고 위축될 필요는 없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 아직 다가오지 않는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지 말자.
내가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적절하게 즐기는 것이 마음 근육 단련에 좋다.
사랑하는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가벼운 여행 등을 통해 삶의 자극과 함께 사회적 유대를 차츰차츰 넓혀가도록 노력한다.

7. 욕심을 비우고 여유로 채워놓기  
암 진단 이전 나는 병원과 스포츠 관련 업무 등에서 목표 달성은 물론 완벽함을 추구하려고 욕심을 자주 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생겼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도 받았다. 건강을 잃고 나니 의미가 없었다.
암 투병을 하면서 욕심을 줄이고 대신 여유를 채워 넣었다.
어떤 일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이만큼 한 것이 어디야. 다음번에 더 잘하면 되지”하며 마음을 내려놓는다.
어쩌다 욕심이 꿈틀거리면 크게 심호흡을 하며 브레이크를 건 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되뇌이며 여유를 가진다.

8. 화나고 힘들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로 마음 달래기
암과의 싸움은 장기전이다. 특히 항암치료 기간이 길어질수록 삶의 질도 떨어지고 지칠 수 밖에 없다.
몸도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데다 증세도 호전될 기미가 없으면 화도 치밀어 오른다.
나를 괴롭히는 고통은 그저 순간이다. 이를 기억하며 힘들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열심히 하면 좋아지리라’는 말로 마음을 달래며 다시 암과 싸운다.

9. ‘포기’는 배추 셀때 하는 말임을 명심하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유명 포수였던 요기 베라의 명언이다.
암환자의 삶은 그야말로 롤로코스터다. 컨디션이 좋았다가도 한 순간에 확 떨어지는 등 들쭉날쭉해서다.
특히 끝이 보이지 않는 항암치료의 기나긴 터널속에서 갑작스런 재발과 전이가 겹치면 치료에 대한 회의와 함께 ‘포기’라는 단어가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암과 싸우는 방법은 다양하다.
지금 하는 방법이 안 맞으면 자신에게 맞는 다른 해결책을 찾으면 된다.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전혀 없다.

10. 살아야 할 의미가 담긴 삶의 목표 새롭게 정하기
말기암 진단 당시 나의 생존확률은 5%에 불과했다.
3년여의 투병 끝에 ‘작은 기적’이 찾아왔다. 덕분에 나는 지금 ‘덤으로’사는 인생을 누리고 있다.
그래서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사명이 주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 흠모하고 있던 영등포의 요셉의원이 떠올랐다.
이곳은 의료진과 자원봉사들이 대가없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무료병원으로 쪽방촌 주민들의 등불 역할을 해왔다.
요셉의원의 선한 영향력은 나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 활동과 병원 주변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무료 진료 등으로 이끌었다.

암을 겪으면서 나는 삶의 목표 한 가지를 새롭게 정했다.
요셉의원처럼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나눔 활동을 체계적으로 펼치는 것이다.
지금도 이 작업을 위한 밑그림을 차근차근 준비중이다.
새로운 목표를 실행하려면 먼저 내 자신이 건강해야 한다.
내가 암에게 절대 져서는 안될 진정한 이유이자 나의 심장을 힘차게 뛰게 하는 원동력이다.

-11편에 계속-

나영무 박사는…

나영무 박사는 솔병원 원장으로 재활의학 ‘명의’다.
1996년부터 2018년까지 축구국가대표팀 주치의를 비롯해 김연아와 박세리 등 수많은 태극전사들의 부상 복귀를 도우며 스포츠재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2018년 직장암 4기 판정을 받았던 나 박사는 투병의 지혜와 경험을 나누며 암 환자들에게 작은 희망을 드리고자 이번에는 ‘암 재활’에 발벗고 나섰다.

솔병원 원장 나영무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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