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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크게 신고 펭귄처럼 뒤뚱뛰뚱…암환자 덮친 비애 [나영무 박사의 말기 암 극복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나영무 박사의 '말기 암 극복기'(4)

항암제는 암세포를 파괴하는 무기다.
하지만 정상 세포도 함께 공격하기에 몸에 악영향을 끼친다.

내게 일어난 가장 큰 외형적 변화 가운데 하나는 신발 사이즈다.
평상시에는 250㎜를 신었지만 항암 치료 후에는 260㎜ 이상을 착용해야만 했다.
발톱과 살 사이가 갈라지면서 속살이 삐져나와 염증이 생기고, 통증과 함께 피가 났다. 발바닥과 발뒤꿈치 굳은살도 같은 신세였다.
신발이 살에 살짝 닿기만 해도 너무 아파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발볼이 넓고 큰 사이즈의 신발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손톱도 마찬가지다. 손톱이 피부로부터 떨어져 피가 났다.
손끝과 손가락 마디의 피부가 벗겨지고 갈라져 컴퓨터 자판을 치거나 스마트폰을 터치할 때 아팠다.
모두 수족증후군의 전형적인 증상들이다.

또한 손발이 저리면서 손끝의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늘로 콕콕 찌르면서 따끔거리는 통증으로 물건을 들거나 캔 음료를 따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고, 생수병 뚜껑을 여는 것조차도 버거웠다.

무엇보다 옷 입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바지를 올릴 때 손끝이 아파 손바닥으로 간신히 올려야 했고, 단추 끼우는 것도 어려워 단추가 없는 니트류의 옷만 입어야 했다.
이는 손발 말초신경염 때문이다.

항암제의 강한 독성 탓에 손톱과 발톱의 말초신경에 산소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긴 것이다.
수족증후군과 말초신경염은 일상생활을 하는데 커다란 방해물이었지만 더 큰 고통은 따로 있었다.

무엇보다 통증 탓에 걷는 속도가 느리고, 걷는 모습도 펭귄처럼 뒤뚱뒤뚱 걸을 수밖에 없고, 수많은 부작용에 따른 고통과 괴로움으로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암 환자로서 겪어야 하는 비애다.

3년여의 암 투병에서 내 몸을 훑고 지나갔던 항암제 부작용 종류를 정리해 봤다.

‘말초신경염, 수족증후군, 오심(울렁거림), 구토, 설사, 변비, 구내염, 구강건조증, 식욕감퇴, 어지럼증, 무기력증, 탈모, 소화불량, 피부발진, 손발톱 변색, 우울, 불면증, 예민함, 불안감, 피로감, 관절통, 근육통, 복통, 흉통, 소변장애, 가려움증, 근감소증, 집중력 저하, 오한, 체중감소, 기운없음, 연하곤란(음식물을 삼키기 힘든 상태), 홍조, 잇몸병, 단기 기억장애, 수술부위 통증, 관절 뻣뻣함, 몸의 변형’ 등 모두 38가지에 이른다.

이런 후유증의 일부는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고, 릴레이식으로 돌아가며 내 몸을 괴롭혔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잘 먹지 못했을 때는 더 심하게 나타났다.
구내염이 조금 가라앉으면 갑자기 목구멍에 통증이 느껴지고, 아랫배가 살살 아프고 두통도 찾아왔다.
마치 오심과 구토의 시간이 지나가면 근육통과 수족증후군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식이다.
이는 항암제 약물이 몸에 축적된 만큼 부작용도 비례해서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을 미치게 하는 고통의 최고봉은 ‘설사와 변비’다.
설사가 심해 지사제를 복용하다 보면 변비가 찾아온다.
그러다 변비를 해결하기 위해 약을 먹으면 다시 설사가 문제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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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악순환’의 반복에 몸은 지칠 대로 지쳐갔다.
항암제 부작용은 몸의 부드러운 점막세포가 있는 모든 곳에서 발생한다.
앞서 언급된 부작용 가운데 입안 점막세포가 떨어지면서 구내염, 대장 점막이 떨어지면서 설사와 변비, 위장 점막이 떨어지면서 구토, 그리고 말초신경염과 수족증후군 등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이런 부작용을 항암 치료의 통과의례로 여기며 고통을 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료진과 상의해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는 등 통증 완화법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슬기로운 암 투병생활이다.

내 경험상 입 안이 헐고 궤양이 생기는 구내염의 경우, 처음 아플 때부터 연고를 발라주는 것이 발생 빈도를 줄여 주었다.
짜고 맵고 뜨거운 음식은 피하면서 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병원에서 주는 가글을 수시로 하는 것이 좋다. (최소 하루 4번 이상)
통증이 심해 음식 섭취가 어려울 때는 갈아서 먹거나 빨대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는 찬물과 탄산수, 사이다 등으로 입안을 차갑게 한 뒤 음식물을 겨우겨우 넘기기도 했다.

잇몸이 벌어지고 아플 때는 주기적인 스케일링을 통해 관리하면 증상 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
구토의 경우에는 약을 먹어도 솔직히 구역질이 났다.
그래도 약 복용으로 구역질 횟수를 줄여 밥을 먹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급적 다양한 음식을 시도해 구역질이 덜 나는 것을 선택하고, 입안에서 많이 씹어서 넘기는 것이 좋다.
내 경우 담백하고 고소한 맛의 음식에서 구역질이 덜 난 편이었다.

또한 배를 따뜻이 하고 ‘엄마 손은 약손’ 하듯 복부 마사지를 해주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특히 구토할 때 몸을 숙이게 되는데 자칫 소화불량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에 몸을 반듯이 펴서 복부가 눌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소화가 안 되면 지체없이 소화제를 먹고 배를 달래주어야 한다.
수족증후군으로 발이 불편할 때에는 실리콘이나 쿠션이 좋은 깔창을 넣어 발바닥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여주는 것이 좋다.
특히 피가 나면 2차 감염이 일어날 수 있기에 소독한 뒤 항생제, 소염제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초신경염의 경우 뜨겁거나 차가운데 노출되면 통증이 더 심했다.
손끝을 자주 마사지해주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동작을 반복하면 증세 완화에 도움이 된다.

이같은 부작용들은 항암약물 치료가 끝나면 대부분 사라지면서 회복되지만 일부는 남아서 지속하는 것도 있다.
칼럼을 쓰기 위해 항암 치료 시절을 더듬는데 갑자기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내 몸을 할퀴고 갔던 항암제의 두려움이 아직도 내 기억 저편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으로 버텼는데 정말 쓰디쓴 시간이었나 보다. 지금까지 절반 이상은 성공한 것 같다
이런 시간을 잘 지나왔기에 아프기 전 내 모습으로의 복귀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5편에 계속-



나영무 박사는…

나영무 박사는 솔병원 원장으로 재활의학 ‘명의’다.
1996년부터 2018년까지 축구국가대표팀 주치의를 비롯해 김연아와 박세리 등 수많은 태극전사들의 부상 복귀를 도우며 스포츠재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2018년 직장암 4기 판정을 받았던 나 박사는 투병의 지혜와 경험을 나누며 암 환자들에게 작은 희망을 드리고자 이번에는 ‘암 재활’에 발벗고 나섰다.


솔병원 원장 나영무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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